도가니/공지영 by 동글이

때로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. 소설이잖아, 안도할 수도 없다. 요즘같은 야만의 시대에는 이런 일이 책 속에서만 일어나란 법도 없다.

우리는 스스로를 선하다 여긴다. 성인군자같이 모두 허허 할 수 있진 않아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깜냥 껏 산다. 나나 가족아닌 타인에게 일어난 불의는 지나칠지 몰라도, 적어도 나는 그런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다. 그래, 우리는 나름 선하다.

싫어하는 직장 후배에게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던질 때도, 맑은 계곡물에 발 담그고 담배재를 물에 털어 낼 때도, 우리는 선하다고 생각한다.

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온 소설 속 주인공이 타인의 불의를 목격한다. 정의감에 불타서가 아니라, 너무 말도 안되는 일이라 화가 나서 바로잡으려 한다. 하지만 돌아오는 건 선하게 살았다고 여겼던 그의 과거였다. 내 생각엔 내가 잘 살았어도, 흠 잡으려고 작정한 남들에게 내 삶은 위선과 악으로 가득할 뿐이다.

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완전 무결해야 할까. 우리 사회는 올바른 일을 할 수 있는 도덕적 자격이 정해져 있다. 굳이 올바른 일이 아니더라도, 무언가 말을 하려면 그에 맞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. 안그럼 돌맞는다. 인신공격의 돌. 이혼한 여자가 얘기할 수 없는 주제가 있고, 군대 미필자가 말 할 수 없는 주제가 있으며, 이런저런거 안해본 사람은 말할 자격도 못얻기도 한다.

본인의 체험을 가지고 얘기하는건 나한테 일어난 일 만큼의 협소함을 가지고 있다. 사람들은 그래도 내가 겪고, 보고, 들으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.

듣지 못하고,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유린한 이사장 형제와 학교직원, 그리고 이 끔찍한 범죄를 오랜 세월 덮어주고 방관해 온 공동체. 공지영 씨는 인턴 기자가 쓴 법정스케치 기사 한 줄에 이 소설을 구상했다지만, 우리는 읽을 수 있다. 제대로 못 듣고,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누군지를, 그리고 그들을 유린하는 사람은 누구를 가르키고 있는지,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그들은 또 누구를 가르키고 있는지.

무진시를 덮고 있는 안개처럼, 결말은 뿌옇다. 사람들은 승리의 기약없이, 길고 힘든 싸움을 온몸으로 치뤄가는 중이다.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난다. 선하게 산 그는 가족을 위해 싸우는 중간에 돌아온다. 남은 이들이 그의 귀경에 화내지 않는건, 남을 위해 온 몸 던지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.

야만의 도가니, 그 속에서 작은 손들을 힘겹게 부여잡고 광풍에 맞서려는 노력은 현실에서 보기 힘들어서, 보아도 못본체 해서, 더욱 아리다.

신문의 사회면 모퉁이 1단짜리 기사, 눈으로 훑다 지나쳐버리기도 하는 많은 사건들, 그 하나를 겨우겨우 펼친 듯하다. 우리는 지나치지만, 그 속에는 수많은 사회 약자의 '인권'과 부와 권력의 '야만'이 있다. 굳이 자세히 펼쳐줘야 알아채는 우리는, 과연 얼마나 선하게 살고 있는 걸까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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